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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내는것이 쉬운사람은 없을것이다.

재이든 2024. 9. 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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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라면 그런자리는 피했을 나이지만,

인생의 소소한 이벤트가 될 수 있겠거니~ 싶어 대화에 응했다.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것,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나의 이상 등..

 

그 중에서 

이 글을 작성하게 만든 주제는 바로 '나의 부족한 점' 이다.

 

우선 이 전 주제는  '나의 장점' 이였다.

나는 나의장점을 배려심과 섬세함 정도로 이야기를했다.

 

그리고 부족한 점에 대해 이야기할때

나는 내가 꼽은 장점의 이면을 바로 들출 수 있었다.

곧바로 장점의 이면을 들추었다는건, 나 역시 평소에 인지하고있었음이라

 

그것은 바로 배려심과 섬세함의 이면에 있는

겁(怯) 이다.

나는 용기를 내는것이 어렵다.

 

항상 그러한가?

그렇지는않다.

 

공적으로 엮여있는 것들에 대해 필요한 일이라면,

나는 주저않고 프로페셔널 하고싶은 한 사회인이되어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지만 공적인 일이 아닌 사적인 일일 때

나는 용기를 내지못한다.

겁을 낸다.

 

용기에 대해서 사전을 찾아봤을때 

용기의 반댓말중에는 비겁이 있다고한다

비겁은 비열하고 겁이있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나는 비열함의 성질은 없다고 생각하니

나름 나를 변호하자면 선한 겁쟁이인 선겁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ㅎㅎ;)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

불편 할 수 있는점이 뭐라도 있진않을까하는 배려심과 섬세함이

겁이라는 이면을 만들어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용기없음은 많은것들을 놓치게 한다.

좋은 인연들과 좋은 사건들을 놓친다.

평소와는 다름없기에 편안 할 수는 있겠지만

리스크없는 삶에 리턴은 없다.

 

학생시절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며 내가 변한것인가도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나는 원래 그랬다' 이다.

 

학생시절에는 용기가 없어도 인연이 맺어질 일 투성이였고, 또 쉽게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시절 너머로는 기본적으로 거리가 있기에 누군가 그 선을 넘지않으면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내가 지어낸 말인 '선겁'따위가 아니라

비겁했던게 맞다. 조금 약하게 순화하자면 소심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

 

첫 번째는,

역지사지와 배려심으로 어찌 상대방의 마음을 내가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건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나의 오만함이다.

 

두 번째는,

실은 상대방이 선을 넘어와 주는것이 더 편안했던 것 아닌가? 

나는 선 안쪽 내 영역에 있으면서

상대방이 선을 넘어오는것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안락함이 있는것이다. 이는 비겁함이다.

 

세 번째는,

선을 넘어와 준 상대방은 두려움이 전혀 없었을까?

그들은 원래 용기있는 사람들이라 그럴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개개인이 특별하다지만, 다른의미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 행했고, 나는 행하지않은 것 뿐이다.

 

--

 

부족한 내 자신이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감사하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의 부족함이 나에게 보였던것이 아니겠는가?

 

어렸을 때 부터 믿어왔던 것 중 하나는

'사람은 변한다'이다.

나는 내가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부족함이 보였다면

고치면된다.

 

겁쟁이가 되지말자.

용기있는사람이 되자.

그러니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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