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전에는 항상 먼저 어떤 선물을 받고싶냐고 물어보는 오랜 친구들이 있다.
한 친구에게는 만년필을,
한 친구에게는 식물을 받았다.
만년필은
만년필을 준 친구 때문인지 만년필에 항상 관심이 있었고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문구를 새겨주어
항상 내 탁자 옆에서 함께하는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식물은
집안에 초록색 싱그러움이 부족했다고 생각했고,
무언가를 키워보고도 싶었다.
친구가 어떤 식물을 원하는지 고르라며 보여준 웹사이트에서
초록색 싱그럽고 귀여운
어찌보면 털뭉치같은 식물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율마였다.
생일이 지나서 율마가 도착하게 되었는데
화분이 깨져와서 문의했더니
하나를 더 보내주겠으며 폐기만 부탁드린다고 나에게 말씀주셨다.
폐기.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받아들였는데 곰곰히 생각할수록 참 아이러니했다.
식물도 분명 생명일텐데
생명에 폐기라는 말을 쓰는것은
마치 어떠한 SF영화에서 한 종족을 말살하는 우월한 존재가 하는말인것 처럼 느껴졌다.
물론 상담원은 그 뜻이 없었을것이며 응대또한 훌륭했다.
다만 저 상자속에 깨진 화분에 있는 초록색 생명은
내가 보기엔 너무 가여워보였다.
화분을 주문하고 깨진 화분속 흙을 만져보니 흙은 축축했다.
깨진 화분을 치우자니
식물에 대해 부족한 내 지식으로도 뿌리가 다칠것만같아 그렇게 하지 않고 잠시 뉘어두었다.
그렇게 화분이 도착했고 식물을 옮겼다.
흙과 돌이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옮겨두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두 번째 율마까지 도착해서
예상치못하게 식물 두 개가 생겨버렸다.
이름은 율이와 마리로 지었다.
율마의 첫글자를 따고
-이 를 붙여 율이, 마리이다.
첫째가 율이, 둘째가 마리이다.
일단 화분을 옮겨놓고
구매한 사이트의 설명을 읽어보는데 참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물을 잘 주고
적정온도만 잘 유지해주면 될 것만 같았다.
혹시몰라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는
율마가 키우기 쉬운 식물은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었다.
율마는
햇빛을 고루고루 꼭 받아야하고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흙이 마르지않도록 듬뿍듬뿍 물을 주어야한다.
그리고 풍성한 잎들 사이사이로 통풍을 잘 해줘야한다.
그래서 최대한 해보고있다.
출근할때 날씨가 좋으면 창문을 살짝열고 블라인드는 개방한다.
주말에는 창문까지 활짝열고 율이와 마리를 창가에 올려둔다.
햇빛을 받는 옅은 초록색과
받지못하는 짙은 초록색을 보고있자니 뭔가 벅차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율마를 몇번 죽이고 나서야 잘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들도 물론 죽이고싶어 죽인것이 아니였을것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죽이고싶지않다.
인생은 경험이고, 헤맨만큼 내땅이라는 말을 품고 사는 나이지만
생명에게는 그런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 않다.
물론 내 미숙함때문에 죽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러지않기를 바랄 뿐이다.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강아지별, 고양이별로 간다는 표현을 한다.
난 그 표현이 참 따듯해서 좋아한다.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니
식물은 죽었을때 '초록별'로 간다는 것 같았다.
초록별.
이 또한 너무나 마음에 든다.
사랑스런 단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어린잎은 바늘잎
어른잎은 비늘잎 이라고한다.
이 또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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