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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야기 34

[AWS Certified] Solutions Architect Associate

AWS환경에 빠져버린(담겨져버린)나는 AWS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져버렸다. 엑세스키, 시크릿엑세스키, IAM도 몰랐고, 그저 EC2 인스턴트 하나 띄워 포트폴리오 용 프로젝트 하나 판 경험이 전부인 나는 객관적으로 볼 때 수준미달이였다. 지금은 내 수준이 티가 안나지만 결국에는 수준차이가 날 터, 빨리 이를 준비해야한다. 그들 보다 더, 적어도 그들만큼은. 그래서 준비하는것이 SAA이다. Solutions Architect Associate. Developer Associate와 더불어 제일 많이 처음으로 도전하는거라고 하고, 2~4주정도면 충분히 한다던 사람의 글도 보았어서 (실수였던게 아닐까 싶다) 한달 후 시험을 치룰 수 있도록 결제를 하고 관련 강의도 두 개를 구매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간신히 앞이 보이는 애송이

그냥 내 일기같은 글. 새벽 여섯시 10분전쯤부터 비몽사몽 요즘 드는 생각을 정리해본다. - - - 예전의 나와 비교해봤을때 많은 부분에서의 성장이있었다. 세부항목은 치워두고, 내가 기록해두고 싶은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왜 애송이 같은가? 좀 더 치열하지못했나? 아니면 만족하기엔 너무 어린가.. 음.. 잠깐 생각해봤을 때는, 아무래도 나는 10년 후에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만족문제는 패쓰. 예전에는 무엇을 해야할지 앞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라면, 이제는 앞은 보이고 해야할 길들이 보이기는 시작한 것 같다. (물론 길도 안보이는 것들도 아직 더러 있지만) 만약 길이 보인다면, 남은건 시간투자 뿐이다. 방향을 맞추고 시간을 갈아넣고 방향을 틀어맞추고 시간을 갈아넣고를 반복하면 원하는 결과..

나태했던 나의 삶에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려보라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였나? 어떤 활동을 할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가? 당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취는 어떤 것인가? 친구나 동료가 당신을 설명할 때 어떤 좋은 자질을 언급해주길 바라는가? 일 자체에서 보람과 성장을 느낄 수 없고, 동료들과 성장을 위한 대화를 할 수 없으며, 내가 우물 안 개구처럼 느껴질 때, 원래의 나의 방향은, 이를 극복하기위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추진하여, 작은 목표부터 하나씩 '작은 달성'을 하며, 결과적으로 처음 계획한 큰 목표를 이룸에 가까워졌어야 했는데 이것에 실패했고, 계속되는 무료함과 나태함에 어떻게든 성취감을 얻고자 다른 취미생활로 눈을 돌렸지만 그것은 결국 나에게는 일시적인 안정..

유니세프, 나의 어린시절 몇몇의 좋은 어른들에게 감사하며

어린시절의 나는 관리를 받는 아이는 아니였다. 먹고살기 바빴던 가정환경에서 나는 따뜻한 보살핌보다 친구들과 밖에 나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했었고, 더 위험한 일에 충분히 노출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했던건, 운이좋아서였던게 컸다고 생각했다. 정말 드물게, 나를 배려해주고 신경써줬던 어른들이 존재했다. 어린 마음에, 그들이 감사한지도 몰랐다. 저런 어른도 있구나.. 싶었지만. 그 감정은 감사함이나 감동과는 거리가 있는, 그저 '색다름'뿐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것을 제외하고는, 드물게 나에게 잘해주셨던 어른들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내가 알게모르게 배려받고, 도움을 받았기에 그리고 철없던 나의 행동에 대한 그들의 관용덕분에 안전하게 성장해낼 수 있었던거 아닐까..

언젠가 너와 나

언젠가 너와 나 중에 누굴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너를 고르고 멀리 떠날래 그럼나를 이해해줄까 딱히 도망가는건 아닌데 그냥 그런 나라고 기억 해도돼 사랑했던건 다시못보겠지만 차라리이게 더 나을거야 내마음을 모두 다 말해 줄 수 없나봐 오래 기억 될 무얼 남겨줄게 언젠가 너와 나 중에 누가 멈춰서야한다면 나는 잡은손을 놓고선 숨을래 그럼 내가 미워 보일까 미안한단 맘이 없진 않은데 그냥 그런 나라고 기억 해도돼 사랑했던건 다시 못보겠지만 차라리 이게 더나을거야 내마음을 모두다 말해줄 수 없나봐 오래 기억될 무얼 남겨줄게 사랑했던건 다시 못보겠지만 차라리 이게 더나을거야 내마음을 모두다 말해줄 수 없나봐 오래기억될 무얼 남겨줄게

김광석

김광석씨의 노래는 마음을 울리는 것 같다. 20대 초반때에도, 정말 옛날 노래같음에도 귀에 박히고 마음을 울렸던 김광석의 노래는 20대 후반인 지금이 되어서는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정말 다양한 노래들이있는데, 이 노래들은 앞으로 내가 나이들어감에따라 어떤식으로 나에게 다가오게될까.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책을 나이가 들어 보면 새롭게 보이듯이, 가사의 깊이를 더 잘 느낄 수 있지않을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김광석씨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중

외로움을 극복하는 연습

지금도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더 어릴적 20대 초반을 생각해보자면 나는 외로움과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외면하고 살았다. 내가 가끔 왜 마음 속 깊이 떨어지는 기분을 겪었는지 내 옆에는 정서적으로 기댈만 한 누군가가 없다는듯한 느낌을 겪었는지 그 이유를 찾지 않았다. 아니다. 이유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가 찾지못한 이유는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였던 것 같다. 항상 나를 둘러싼 집단이 존재했다. 학교, 학원, 팀, 학생회 등 따라서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깊이 파고들 때면 그 집단에 속함으로서 애써 그 기분을 털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사회인이 된 지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지에 홀로 올라와 살고있는 사회인이 된 지금. 그 부정적인 감정은 그대로 나에게 직면..

직장에서는 아무도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번 회사에서 지금 약 8개월차가 되어가고있다. 지금은 나름 내 포지션을 잡아 뚝딱뚝딱 열심히 하고는있지만, 처음부터 이 서비스를 담당할 '계획'은 아니였다. '계획'이란 팀장님의 인력배치이다. 나는 A서비스와 B서비스, 그리고 C서비스중에 하나에 배치될 예정이였는데, A서비스에 급한 개발건이 추가되어 그쪽으로 급히 투입되었다. A서비스의 담당개발자분과 고군분투하며 완성해내었다. 내 롤모델은 이 때의 담당개발자님이다. 빠른호흡의 개발실력, 파트너사와의 소통, 문의(질문), 문의(답변), 나와의 싱크맞추기, 수시로 거시적인 시각에서의 문제탐색 등.. 너무나 대단해보였다. 그 경험을 계기로 나는 A서비스에 투입되어 그 담당개발자님과 합을마추고 그분의 많은걸 배우고싶었다. 이때 급하게 투입되어 개발한 경험때문..

센치한 감정을 느끼고싶다

외부적인 요인때문에 우울감을 느낄때 말고, 나 스스로 울적해지거나 괜히 센치해질 때가 과거에는 많았다. 그때는 분위기나 대화,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에도 쉽게 센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그 센치함을 즐기기도 했지만, 즐기기 보단 경계를 더 많이했다. 센치함을 느끼면 너무 감정적인 사람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할일이 많은데 감정적이게 되어버리면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감정적이게 되어버릴 때 열중하게 되는것은 글쓰기였다. 주로 내 감정에 대한 글이나, 평소 생각해왔던 고찰거리에 대해 써나갔다. 그래서 그때는 내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았었다. 생각이 풍부했었고 주관도 뚜렷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것 처럼, 내 장래를 위한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 빈도를 줄..

메인 개발자의 첫 서비스 배포까지

[신입개발자인 내가 메인개발자?]우리 팀은 리소스가 턱없이 부족하다.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팀 내 메인 서비스의 서브 개발자로 바로 투입되어 백엔드 개발을 수행했던 나.피곤했지만, 나의 롤모델이 메인개발자로 있었기에 의지되었고 함께여서 기뻤다.또 나의 동기도 서브 개발자로 투입되었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빠듯한 일정이였지만 좋은 결과를 내었었다. 그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나를 성장 시키기에는 좋은 조건이였어!서브 개발자로서 롤모델 옆에서 진공청소기마냥 모든걸 빨아들여야지.최고의 서브 개발자가 된 다음, 메인 개발자로 단번에 올라갈거야!! 라고 생각했던 나. 나와 롤모델, 내 동기가 투입되었던 서비스의 다음 개발 일정이 잡혔고,그 기능의 메인 개발자는  바로 나..였다. 메인개발자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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